스스로를 지키는 삶 하나님 앞에서

누가복음 11장 24~26절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하면 그 귀신은 쉴 곳을 찾아서 물 없는 곳을 헤멘다. 그러나 찾지 못하면 그 때에 그 귀신은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야겠다'한다. 귀신이 돌아와서 보면 그 집은 말끔히 청소되고 잘 정돈 되어있다. 그 때에 그 귄신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움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귀신, 악마에 관한 이야기는 뭔가 환상스럽고 비현실적인, 실제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귀신과 악마의 문제를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죄와 악의 문제들이라고 한다면 그 양상은 현저히 달라진다. 

본문은 상황의 악화를 말한다. 귀신들림의 상태는 죄와 악을 행하고 그 생활 가운데 있는 상태-귀신의 유혹에 휘둘리는 상태-를 말한다. 지름신에 씌이게 되면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본래 의지에 반하여 행동하게 만드는 것,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 귀신들림의 상태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귀신이 그 사람의 속에서 나왔다. 여기서 귀신이 나왔다는 것은 귀신으로부터 자유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단순히 죄와 악을 행하지 않는 상태로도 볼 수 있다. 귀신이 쫓겨간 것이 아니라, 귀신이 스스로 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귀신으로부터 자유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사람이 진정 자유하다면 귀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 귀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름신으로 예를 들자면, 그저 지름신이 떠나 지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이지, 지름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중에 더큰 지름의 유혹이 찾아올 때에는 그저 순종하는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귀신이 돌아왔을 때 이 사람은 무기력하게 귀신에게 휘둘림을 당하게 된다. 이 귀신은 그 사람의 속이 넓어지고, 청소된 것을 보고 일곱귀신을 더 데리고 오게 된다. 다시 지름신의 예를 들자면 지르지 않고 모아놓은 총알로 더 많은 지름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자면 죄와 악을 행하던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건 죄와 악을 행하지 않고 바르게 살기로 했다. 한동안 그는 '괜찮게'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악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전 보다 더 심하게 그것을 탐닉하게 되었다. 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성도의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와 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벗어난 삶은 '자유로운'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유혹에 휘둘리는 삶을 가리키는 것이다. 경건의 흉내를 내는 것 만으로도 삶은 어느정도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평안을 가져올 수 없다. 왜냐 하면 삶의 기초가 깊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초를 깊게 파는 것이 중요하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눅 6:48)

참 강하신 분이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안전함과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현재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다양할 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의 결심과 감정의 일시적 변화는 그야말로 일시적인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이란, 신뢰란 믿을 수 없는 것, 당장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어린이날에 자전거를 사줄 것이라는 약속을 아이는 아무런 계약서나 증거나 담보가 없어도 믿고 행복해 하며, 결국 선물을 받고 기뻐한다. 이것이 신뢰이다. 하나님과 백성과의 신뢰관계는 동일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십자가의 승리는 일시적인 상태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진정한 영적 승리도 일시적인 상태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회복하고 영적 상태를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깊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령님의 능력을 힘힙어 살아가는 것, 성령에 감동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에서 나오는 믿음에서 근거한다. 
성도가 날마다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어지게 한다. 사단은 이 회개를 방해 한다. 그러나 회개는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과 상관 없는 부분들을 끊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온전한 회개는 매일매일 성도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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